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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호] ‘헤이트 스피치’…한일 국민적 화해 이룰 수 있을까

[신년호] ‘헤이트 스피치’…한일 국민적 화해 이룰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5. 01. 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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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한(反韓) 넘어 혐한(嫌韓)으로, 일본 '과거사 반성' 핵심이지만 여전히 역사인식 결여
2015년 새해 우리나라는 일본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과거사 문제로 굴곡을 겪으며 양국이 오랜 경색관계를 유지해왔던 만큼 이를 계기로 발전적인 국면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본 내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문제는 한·일 국민들 간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반한(反韓)을 넘어 혐한(嫌韓) 감정으로 확대되고 있어 국민적 화해가 시급한 상황이다.

헤이트 스피치는 증오발언·증오연설·혐오발언·증오언어 등으로 번역돼 쓰이고 있다. 대상은 인종·성별·종교·민족·정치적 견해·사회적 계급 등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편견을 갖도록 부추기는 것이 목적이다.

이에 동조한 대중의 경우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헤이트스피치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증오하고 혐오하며 언어적 폭력과 극단적인 경우 살인도 불사하지 않는 등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 헤이트 스피치 사례 “한국인 여성을 성폭행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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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재일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경우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교토(京都)의 조선학교 인근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조선학교를 일본에서 몰아내자” “(조선인은) 스파이의 자식”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학교와 학생들은 심각한 위협을 느꼈고,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도쿄(東京)에서도 2011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주일 한국대사관 주변과 신오쿠보(新大久保) 한인 거리 등에서 349건의 혐한 시위가 있었다. 나흘에 한 번꼴로 시위가 이어진 셈이다.

주로 우익단체들이 연 시위에서 “재일 바퀴벌레 조선인을 내쫓아라” “한국인 여성을 성폭행해도 된다”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거리의 한인 상점들은 매출이 줄었고 주민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일본 내 혐한 출판물의 발행도 2005년부터 증가추세를 이어오고 있다. 제목부터 ‘부끄러운 한국(恥韓論, 치한론)’, ‘침몰하는 한국(沈韓論, 침한론)’ 등 악의적인 의도가 담겨있다.

헤이트 스피치를 주도하는 우익단체인 재특회가 저술한 ‘대혐한시대(大嫌韓時代)’와 한국을 벌주자는 ‘주한론(誅韓論)’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도 한국인들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재일한인 젊은이들 절반가량은 매주 한 차례 이상 인터넷에서 한인들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일코리안청년연합(KEY)이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도쿄·오사카(大阪)·효고(兵庫)현 등지에 거주하는 10~30대 재일코리안 2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8%가 주당 1 차례 이상 봤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약 80%는 인터넷에서 헤이트스피치를 봤을 때 분노와 공포를 느꼈다고 답했다.

◇ 일본 정부는 뭐했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일본 정부는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일본은 1995년 인종차별철폐조약에 가입했지만 지금까지 헤이트 스피치를 막기 위한 법적인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

최근 법원이 개별적으로 제기된 소송에서 인종차별철폐조약을 근거로 들며 재특회에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린 것이 전부다.

현재 일본에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차별 시위 규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도쿄도(東京都) 구니타치(國立) 시의회를 비롯해 국회에 법적 규제를 촉구하는 지방의회 결의안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법은 놔둔 채 경찰을 동원해 현장의 폭력 충돌만 막겠다는 식이다.

지난해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차별행위 관여자를 수사하라고 촉구하는 등 일본 정부에 강도 높은 권고를 했다. 이에 집권당인 자민당은 ‘헤이트 스피치 검토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혐한시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률검토에 나섰다.

하지만 우익단체는 물론 일본 정부 안에서까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며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실효성 있는 규제 법률이 만들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본 법무성은 최근 헤이트 스피치 근절을 위한 홍보 및 교육활동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신문 광고와 포스터 및 전단지, 역 구내 광고,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혐오시위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헤이트 스피치를 법적으로 규제하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계몽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 국민적 화해 방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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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헤이트 스피치와 같은 혐한시위가 우리 국민의 반일감정과 맞물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도 혐한하지 않고 우리나라도 반일하지 않는다면 양국 국민 간에도 다소 화해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일본의 혐한은 민족적 증오와 차별에서 비롯된 반면 우리의 반일은 과거 일본의 만행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반일과 혐한을 같은 선상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한·일 국민 간 감정의 골을 좁히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과거사 반성’이 핵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 8월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3명 중 2명은 과거 침략전쟁에 대해 ‘충분히 사죄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여전히 일본 내 역사인식이 결여된 현실을 보여줬다.

이에 일부 국내 단체들의 경우 일본과 공동으로 헤이트 스피치 문제에 대응하기로 결의하는 등 물밑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지난 10월 일본기독교협의회 등과 헤이트 스피치에 공동 대처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친박(친박근혜) 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한·일의원연맹도 같은 달 헤이트 스피치가 양국 우호 증진과 재일동포의 생존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유의하고, 가두 데모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우리 국회도 지난 2일 ‘일본내 혐한(嫌韓) 시위 근절을 위한 촉구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혐한시위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한편 유엔 등 국제적 연대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헤이트 스피치는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증오범죄)’의 하나라는게 통념이다. 범죄이므로 당연히 처벌이 따라야 한다”며 “일본에서 법을 만들고 있고, 헤이트 스피치하는 사람의 한국 입국을 막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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